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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스페인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계획에 없던 여행이었지만 마침 친구가 바르셀로나에 있다는 소식에 바로 티켓을 예매했다.

 

 

베니스에서 바르셀로나로 가는 방법은 베니스의 마르코폴로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면 된다. 베니스 구도심에서 마르코폴로 공항까지는 공항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버스는 베니스 산타루이아역 옆에 있다.

 

 

이 다리를 건너면 공항으로가는 버스 정류장이다. 

 

이른 새벽이라 베니스는 한산했다. 물의 도시 베니스를 뒤로 하고 스페인으로 향했다.

 

육교 건너에 보이는 것이 버스 정류장이다. 오른쪽 매점처럼 단층건물에서 마르코폴로 공항으로 향하는 표를 구매할 수 있다.

 

 

마르코폴로 공항. 베니스에서 바르셀로나까지 비행시간은 얼마되지 않는다.

 

 

스페인은 영문이름이고, 정식명칭은 에스파냐이다. 아프리카와 유럽의 경계에 위치하고 지중해와 대서양을 잇는 관문으로 일찍이 항해기술이 발달했다. 스페인은 지리적인 특성으로 인해 유럽과 아프리카, 지중해 문화를 골고루 받아들였다고 한다.

 

 

바르셀로나는 지중해 연안의 항구도시로 스페인 제1의 도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의 도시로도 유명하다. 1852년 생인 가우디는 주물제조를 하는 아버지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가우디는 뛰어난 조각가의 기질을 물려받아 바르셀로나 도시전체를 자신의 박물관으로 불리게 만들었다. 바르셀로나가 가우디 박물관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도시 곳곳에 가우디의 작품이 많고, 그의 작품을 돌아보는 가우디 투어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그 중 하나인 카사 바트요. 가우디가 바다를 형상화 하여 지은 건축물로 직물업자 바트요의 저택이다. 외관 디자인은 바르셀로나의 수호성인인 성 조지의 전설을 답고 있다고 한다. 성 조지의 전설은 기사 게오르기우스가 용과 싸우는 내용이라는데 자세한 것은 잘 모르겠다.

 

 

외벽의 청록색 세라맥은 용의 비늘을 상징하며 발코니의 기둥은 해골과 뼈를 연상시킨다. 바사바트요 건설당시는 그리스의 신전이 극채색이었다는 연구발표에 따라 다채색 건축이 유행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가우디는 타일을 이용해 색채를 표현했다. 덕분에 카사바트요는 햇빛을 받으면 보석처럼 빛난다.

 

 

동물의 뼈 처럼 생긴 외관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구조적인 역할까지 하고 있다. 낡은 주택을 재건축하면서 구조적으로 해결한 것이라고 한다. 카사 바트요는 입장료를 지불하면 내부를 구경할 수도 있다.

 

 

다음으로 간 곳은 카사밀라. 카사바트요에서 걸어서 3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가우디가 설계한 공동주택으로 라 페드레라(La pedrera)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라 페드레라는 '채석장'이라는 뜻이다.

 

 

가우디는 라 페드레라를 몬세라도 산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했다고 한다. 덕분에 바르셀로나 도시 한 가운데에 거대한 자연을 건축했다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직선 위주의 바르셀로나 도시 풍경 속에서 카사밀라는 더 눈의 띈다. 외관의 춤추는 듯한 곡선은 '멈추지 않는 선(Endless Line)'으로 묘사될 정도였고, 이는 내부 공간에서도 볼 수 있다.

 

 

라 페드레라의 입장권을 구매해서 내부를 살펴보았다. 티켓을 구매하면 오디오 투어를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는데, 한국어 지원이 되어 정말 좋았다.

 

 

한국어 오디오는 어설픈 발음이 아니라서 듣기에 아주 편했고, 공인된 설명을 들을 수 있어서 시간과 돈이 아깝지 않았다.

 

 

오디오를 들으면서 옥상으로 오르면 기이한 디자인의 환기탑을 볼 수 있다. 외계인의 집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디자인을 가우디는 어떻게 해낸 것일까.

 

 

저 멀리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 성당이 보인다. 가우디의 역작이자, 바르셀로나가 가우디의 도시라고 불리는 가장 큰 이유다. 100년이 넘도록 공사를 하고 있다.

 

 

다시 내부로 들어와서 공동주택을 계속 구경했다. 동물의 늑골을 형상화한 아치는 뱀의 뱃속, 혹은 고래의 뱃속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가우디가 건축을 디자인할 때 사용하는 방법들도 설명되어 있었다. 그는 중력을 이용해 설계했는데, 실과 구슬을 엮어 거꾸로 뒤집으면 나오는 형상으로 설계했다고 한다.

 

 

가우디는 작은 디테일에도 세심하게 신경썼다. 뿐만 아니라 노동의 의미와 노동자의 삶을 소중하게 여기기도 했다. 그의 저택에 들어가는 가구에는 노동자의 흔적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손을 본뜬 문고리, 의자 등등이 바로 그것이다.

 

 

 

카사밀라를 나와 향한 곳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성스러운 가족'이라는 뜻인데, 예수와 마리아, 요셉을 위한 성당이라고 한다. 

 

 

가우디의 스승인 비야르가 설계와 건축을 맡았으나 중도하차 했고, 1883년부터 가우디가 이어서 맡게 되었다.

 

 

외계인이 만든 성 처럼 보이는 대성당. 아쉽게도 파밀리아 성당에는 입장할 수 없었다. 하루 입장가능한 인원이 제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장구매로는 입장이 거의 불가능했다. 인터넷을 통해 사전 예매를 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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